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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혼인취소의 사유와 효과, 이혼과 다른 점
결혼 전에 상대방이 중요한 사실을 속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분들이 가장 먼저 하시는 말은 이 결혼을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께서는 속아서 한 결혼이니 이혼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물론 법에도 혼인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는 제도가 있지만, 사실 속아서 한 혼인은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혼인을 끝내는 방식은 셋이고, 각각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혼인 무효'로, 민법 제815조는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가까운 혈족이나 직계인척 사이의 혼인처럼 혼인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때를 무효로 정하고 있고,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이 아닙니다. 둘째는 '혼인 취소'로, 제816조는 혼인 당시에 일정한 하자가 있었던 경우 법원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취소될 때까지는 유효한 혼인입니다. 셋째는 '이혼'으로, 제840조는 혼인 뒤에 생긴 사유를 들어 유효한 혼인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즉 무효는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고, 취소는 성립은 하였으나 성립 과정에 하자가 있는 것이며, 이혼은 성립에 아무 문제가 없는 혼인을 그 뒤의 사정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속아서 한 혼인은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자 있는 합의로 성립한 것이므로 둘째 자리, 곧 취소의 자리에 놓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하자가 있어야 취소할 수 있을까요?
제816조는 세 가지 사유를 들고 있습니다. 제1호는 혼인적령, 부모 등의 동의, 근친혼 금지, 중혼 금지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때로, 혼인이 갖추어야 할 법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입니다. 제2호는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때이고,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입니다.
여기에서 이혼사유와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제840조의 이혼사유가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심히 부당한 대우처럼 혼인 뒤에 일어난 일을 묻는 것과 달리, 제816조의 취소사유는 모두 '혼인 당시'를 기준으로 합니다. 혼인 당시에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혼인 당시에 중대한 사유를 몰랐거나, 혼인 당시의 의사표시가 사기나 강박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뒤에 상대방의 성격이나 생활이 기대와 달랐다는 것은 취소사유가 아니라 이혼사유의 문제이고, 결혼 전부터 있었던 사정을 상대방이 숨겼다는 것이 취소사유의 문제입니다. 속았다는 말이 법률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그 속임이 혼인의 의사표시에 영향을 미친 것이어야 하고, 이것이 제3호의 사기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므654 판결은 제816조 제3호의 '사기'에는 혼인의 당사자 일방 또는 제3자가 적극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고지한 경우뿐 아니라 소극적으로 고지를 하지 않거나 침묵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곧바로 한계를 달았는데, 불고지나 침묵의 경우에는 법령, 계약, 관습 또는 조리상 사전에 그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인정되어야 비로소 위법한 기망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지 않은 것이 모두 사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였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것만이 사기가 됩니다.
그 의무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 판결은 당사자들의 연령, 초혼인지 여부,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때까지 형성된 생활관계의 내용, 그 사항이 혼인의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의 정도, 그 사항이 부부가 애정과 신뢰를 형성하는 데 불가결한 것인지 또는 당사자의 명예나 사생활 비밀의 영역에 해당하는지, 상대방이 그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는지,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정이 무엇인지 같은 구체적·개별적 사정과 함께 혼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가치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사정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정을 상대방에게 미리 알릴 의무가 있었다고 볼 만한 것이어야 하며, 그 사정이 상대방의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면 알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사기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취소사유가 있다면 언제까지, 그리고 어떤 효과로 취소할 수 있을까요?
취소권에는 기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제823조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은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822조는 제2호의 악질 등 사유가 있는 혼인은 상대방이 그 사유 있음을 안 날부터 6개월이 지나면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혼인은 신분관계이고 그 위에 자녀와 재산의 법률관계가 쌓이므로, 하자가 있더라도 그것을 안 뒤 짧은 기간 안에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사기를 알고도 3개월을 넘기면 취소의 길은 닫히고 그 뒤에는 이혼의 문제만 남습니다.
취소의 효과도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제824조는 혼인 취소의 효력이 기왕에 소급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어서, 취소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전의 혼인은 유효한 혼인이었던 것으로 남고, 혼인 중에 태어난 자녀는 그대로 혼인 중의 자녀이며, 혼인 중에 이루어진 법률관계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그래서 취소 뒤에 정리하여야 할 것도 이혼과 같은데, 제824조의2는 자녀의 양육책임과 면접교섭권에 관하여 이혼의 규정인 제837조와 제837조의2를 준용하고, 가사소송법 제2조는 혼인의 취소를 원인으로 하는 재산분할과 친권자 지정을 마류 가사비송사건으로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육과 재산분할은 이혼의 경우와 같은 절차로 정합니다. 여기에 제825조가 약혼 해제의 손해배상 규정인 제806조를 준용하여, 혼인이 취소되는 때에 과실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재산상 손해와 정신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장래의 혼인관계뿐이고, 지나간 혼인은 그대로 남은 채 이혼과 같은 정리가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취소와 이혼 중 무엇을 택하여야 할까요?
결과만 놓고 보면 두 길은 닮아 있습니다. 자녀의 양육과 면접교섭은 같은 규정으로 정해지고, 재산분할도 같은 절차로 이루어지며, 손해배상도 취소에서는 제825조로, 이혼에서는 제843조가 준용하는 같은 제806조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취소를 택한다고 하여 이혼보다 더 많은 것을 받는 구조는 아닙니다.
차이는 결과가 아니라 사유의 증명에 있습니다. 취소는 혼인 당시의 하자를 증명하여야 하고, 사기에 의한 취소라면 상대방이 고지할 의무가 있는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까지 3절의 기준에 따라 세워야 하며, 그것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청구하여야 합니다. 반면 이혼은 혼인 뒤의 사유를 제840조에 따라 증명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결혼 전의 사정을 숨겼다는 것이 그 자체로 이혼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정이 드러난 뒤의 혼인생활이 제840조의 어느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별도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길을 갈지는 속았다는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숨겨진 사정이 고지의무의 대상인지, 그것을 안 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혼인 뒤의 사정이 이혼사유로 구성될 수 있는지를 놓고 정하여야 합니다. 두 길이 모두 열려 있다면 취소를 주위적으로, 이혼을 예비적으로 함께 청구하는 구성도 가능하고, 그 선택이 소송의 증명 대상을 정합니다.
결혼 전에 상대방이 숨긴 사실을 알게 되어 혼인을 끝내려 하시는 상황이라면, 3개월의 기간이 지나기 전에 취소와 이혼 중 어느 길이 맞는지 변호사와 상세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