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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배우자 외도의 정황증거, 인정된 사례와 인정되지 않은 사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거나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한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경우, 그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주장하는 쪽에서 증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부정행위는 그 성질상 당사자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행하는 것이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직접 보여주는 증거가 남기 어렵고, 결국 그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여러 정황, 즉 ‘정황증거’를 모아 다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먼저 짚어둘 것은, 증명하여야 하는 대상이 반드시 성관계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민법 제840조 제1호의 "부정한 행위"란 "배우자로서의 정조의무에 충실치 못한 일체의 행위를 포함하며 이른바 간통보다는 넓은 개념"이고, 부정한 행위인지 여부는 "각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정도와 상황을 참작하여 평가하여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므68 판결). 따라서 정황증거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도 이 넓은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정황이 쌓여 있다는 것과 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비슷해 보이는 정황을 가지고도 결론이 정반대로 갈린 두 사건이 있는데, 이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보면 법원이 정황증거에서 무엇을 읽어내는지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부부가 서로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부정행위가 혼인 파탄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자료를 청구하였고, 그 근거로 아내의 가족과 나눈 통화의 녹취록, 제출된 영상 자료와 주거지 앞을 비추는 CCTV 영상, 그리고 아내의 모텔 결제 내역을 제출하였습니다. 아내 역시 남편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며 반소로 위자료를 청구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는 누구에게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통화 녹취록에 의하면 아내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닌지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영상 자료와 CCTV 영상을 살펴보더라도 촬영된 인물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식별되지 아니하고, 모텔 결제 내역만으로는 다른 이성과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부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그 결과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어느 한쪽에 주로 있다고 보기 어렵고 양쪽의 책임이 대등하다고 보아, 이혼은 인용하면서도 서로가 청구한 위자료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남편과 별거 중이던 아내가 남편의 상대 여성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숙박 기록도 없었습니다. 대신 법원이 두 이동통신사에 대하여 한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두 사람 사이의 통화와 문자 내역이 제출되었습니다. 그 내역에 따르면 상대 여성은 하루 사이에 남편에게 약 40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 대부분이 밤 11시 이후에 전송되었으며, 그 뒤로 약 2주간 10건, 다시 약 2주간 36건의 통화가 이어진 데 더해 석 달가량 연락이 계속되었습니다.
상대 여성은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하였지만, 법원은 업무 연락을 위하여 늦은 밤에 다수의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판결문은 여기에 더해, 상대 여성이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제출한다면 업무 연락이었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인데 그 내용은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따로 적어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내가 상대 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시기를 짚어 묻자 상대 여성이 그렇다고 답한 녹음, 그리고 상대 여성이 남편을 "자기야", "여보"라고 부른 대화가 더해지면서, 법원은 늦어도 연락이 급격히 늘어난 무렵부터 부정한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상대 여성은 부부가 이미 별거에 들어갔고 이혼소송까지 제기되었으므로 혼인관계가 파탄된 뒤였다고도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통신 내역이 부정행위의 시작을 별거보다 앞선 시점으로 특정해 주었기 때문에, 법원은 부정한 행위가 시작될 당시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상대 여성에게 위자료의 지급을 명하였습니다.
두 사건 모두 부정행위를 직접 보여주는 증거는 없었고, 증거의 가짓수만 놓고 보면 오히려 첫 번째 사건 쪽이 더 많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론이 갈린 이유를 이해하려면, 법원이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기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이 "추호의 의혹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은 아니나",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일 것을 필요로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 이혼소송과 같은 가사소송 역시 가사소송법 제12조에 따라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민사소송법에 따르게 되어 있으므로, 이 기준은 두 사건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판결의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화재가 담뱃불로 발생하였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나 이러한 의심만으로는" 그 원인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원심을 그대로 수긍하였는데, 이는 첫 번째 사건의 법원이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쓰고도 부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즉 판결문에 의심이 든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는 것은 증명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의심’과 ‘증명’ 사이에 아직 거리가 남아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사건에서는 무엇이 그 거리를 좁혔을까요. 판결문에서 읽히는 범위 안에서 정리하자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증거가 특정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의 CCTV 영상은 촬영된 인물이 누구인지 식별되지 않았고, 모텔 결제 내역은 결제가 있었다는 사실만 보여줄 뿐 누구와 함께였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두 번째 사건의 통신 내역은 처음부터 남편과 상대 여성 사이의 연락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둘째, 상대방이 내놓은 다른 설명의 여지를 기록 자체가 좁혀 놓았습니다. 업무상 연락이었다는 해명은 그 자체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설명이지만, 밤 11시 이후에 집중된 수십 건의 문자라는 기록 앞에서는 설득력을 잃었고, 그 해명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문자 내용이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판결문에 남았습니다. 셋째, 서로 다른 출처의 증거가 한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통신사의 기록과 상대 여성 자신의 시인, 그리고 호칭은 각각 따로 떼어 놓으면 결정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대법원이 말한 대로 모든 증거를 종합하였을 때 같은 결론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덧붙여 두 번째 사건의 통신 내역이 몰래 수집한 것이 아니라 법원의 절차를 거쳐 제출된 것이라는 점도 짚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의2는 법원이 재판상 필요한 경우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법 제2조 제11호가 정의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신의 일시와 개시·종료시간, 상대방의 번호, 사용도수 등에 관한 자료일 뿐, 대화의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도 법원은 통신사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통화와 문자의 내역을 확보하였고, 그래서 다툼은 내용이 아니라 건수와 시간대를 두고 벌어졌던 것입니다.
물론 이 두 사건을 가지고 통화 기록만 있으면 부정행위가 인정된다거나, CCTV와 결제 내역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두 사건 모두 1심 판결이고, 같은 종류의 증거라도 그것이 무엇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여주는지, 다른 사정과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따라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법원이 정황증거를 볼 때 무엇을 묻는가 하는 관점입니다.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의심하게 되면 그 의심을 뒷받침할 자료를 가능한 한 많이 모으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두 사건이 보여주듯 법원이 묻는 것은 의심의 크기나 자료의 양이 아니라, 그 자료가 누구와 누구 사이의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내놓을 수 있는 다른 설명을 얼마나 좁혀 주는지입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자료가 있다면, 그것이 막연한 의심을 키우는 자료인지 아니면 특정한 관계를 가리키는 자료인지를 먼저 냉정하게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에 소개된 사례는 실제 재판례를 바탕으로 하되, 당사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실관계를 각색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과 결과는 실제 판결의 내용 그대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