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전체메뉴
칼럼
돈을 빌려주고 밥을 산 사이, 부정행위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와 인정된 사례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따로 만나 식사를 하고 돈을 빌려주거나 선물을 사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부정행위라고 느끼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반대로 그 관계를 의심받는 쪽에서는 성관계가 없었으니 부정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두 생각 중 어느 쪽과도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성관계가 없으면 부정행위가 아니라는 생각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대법원은 민법 제840조 제1호의 "부정한 행위"란 "배우자로서의 정조의무에 충실치 못한 일체의 행위를 포함하며 이른바 간통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므68 판결). 실제로 이 판결은 상대방이 고령에 중풍으로 성관계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더라도, 배우자 아닌 사람과 동거한 행위는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성관계는 부정행위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실일 수는 있어도, 부정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자 아닌 이성과 가깝게 지낸 모든 관계가 부정행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같은 판결은 부정한 행위인지 여부를 "각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정도와 상황을 참작하여 평가"하여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는데, 이는 개념이 넓은 만큼 그 경계는 사안마다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배우자의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상간소송에서 대법원이 문제 삼는 것은,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유지를 방해"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대법원 2015. 5. 29. 선고 2013므2441 판결). 결국 관계가 그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법원이 무엇으로 확인하는지가 핵심인데, 비슷해 보이는 관계를 두고 결론이 갈린 두 사건이 그 답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원고가 자신의 배우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상대방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입니다. 원고는 상대방이 약 2년에 걸쳐 배우자를 만나며 부정행위를 이어왔고, 그로 인해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원고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수십 호증에 이르는 서증을 제출하였고, 원고의 배우자 본인도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증언하였습니다.
법원은 원고의 증거에 의하여 몇 가지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원고의 배우자로부터 돈을 일부 빌린 사실,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한 사실, 그리고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거나 직접 주문해 주는 방법으로 물건을 사준 사실이 그것입니다. 즉 원고가 문제 삼은 관계의 외형은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번호를 붙여 따로 적었습니다. 첫째, 두 사람이 서로 애칭으로 부르거나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연락을 주고받거나 성적인 접촉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 두 사람은 카페나 식당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만 만났고 모텔이나 숙박업소에서 만난 사실은 없다는 점입니다. 셋째, 두 사람 사이의 통화나 메신저 대화에서 업무적인 관계 이상의 친밀한 관계임을 알 수 있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넷째, 두 사람과 함께 근무하였던 다른 직원들이 두 사람 사이에 업무적인 관계 이상의 사적인 감정이나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느낄 만한 정황이 없었다고 진술하였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앞서 인정한 사실과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부정한 행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고,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습니다. 돈이 오가고 함께 식사하고 선물을 사준 사실이 모두 인정되었는데도, 그것이 부정한 행위라는 법적 평가로는 이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약 13년간 혼인관계를 유지해 온 원고가 배우자의 상대방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으로, 부부 사이에는 미성년 자녀 둘이 있었습니다. 판결문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관계였는지에 관한 기재가 거의 없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상대방이 원고의 배우자에게 배우자가 있음을 알면서도 약 1년 동안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고, 함께 모텔에 출입하였다는 것뿐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사건에서 법원이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따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판결문은 위 두 가지 사실을 들어 곧바로 부정행위를 인정하였고, 상대방에게 위자료의 지급을 명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을 증명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부정행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위자료의 액수는 부정행위의 내용과 경위, 기간, 혼인기간과 자녀관계, 그리고 부정행위가 발각된 이후 소송에 이르기까지의 정황 등을 고려하여 정하였습니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보면, 첫 번째 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이 두 번째 사건보다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첫 번째 사건에서는 금전 거래와 식사, 선물이라는 여러 사실이 인정되었고 배우자 본인의 증언까지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은 문자메시지와 모텔 출입 두 가지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결론이 갈린 것은, 법원이 확인하려 한 것이 ‘관계의 외형’이 아니라 그 관계가 친밀한 사이였음을 보여주는 표지, 즉 ‘친밀성의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법원이 번호를 붙여 적은 네 가지 사정은 그 표지를 확인하는 목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①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 흔적이 있는가, ②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만났는가, ③ 두 사람의 대화가 업무나 일상적인 교류를 넘어서는 성격이었는가, ④ 가까이에서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이 그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차례로 살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에서 인정된 두 가지 사실은 이 목록의 ①과 ②에 그대로 대응합니다.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는 애정 표현의 흔적이고, 모텔 출입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접촉입니다. 결국 두 사건의 차이는 인정된 사실의 개수가 아니라, 그 사실이 이 목록의 어느 칸을 채웠는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짚어둘 것은, ‘사실의 인정’과 ‘법적 평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되었다고 하여 그 사실이 곧바로 부정한 행위로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사건의 원고는 자신이 주장한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친분이 있는 동료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그 사실만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부정한 행위를 넓게 보면서도 "그 정도와 상황을 참작하여 평가"하여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 평가의 단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증거의 양과 성질도 구별하여야 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수십 호증의 서증과 배우자 본인의 증언이 있었는데도 청구가 기각된 것은, 그 증거들이 관계의 외형을 보여주는 데 그쳤고 친밀성의 표지를 보여주지는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넷째 사정인 동료 직원들의 진술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 진술이 두 사람의 관계를 업무적인 관계로 보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두 사건을 가지고 애정 표현이 담긴 문자와 숙박업소 출입 기록이 모두 있어야만 부정행위가 인정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두 가지 사실이 함께 있었던 사안이어서, 그중 하나만 있었다면 어떻게 판단되었을지에 대해서는 판결문이 답하지 않습니다. 또한 두 사건 모두 1심 판결이고, 부정한 행위인지 여부는 대법원의 말처럼 사안마다 그 정도와 상황에 따라 평가되는 것입니다. 두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정해진 공식이 아니라, 법원이 관계의 경계를 판단할 때 무엇을 살피는가 하는 기준인 것입니다.
배우자와 다른 이성 사이에 돈이 오가고 식사와 선물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자체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그 감정이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송에서 법원이 묻는 것은 그 관계가 얼마나 불쾌한가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애정 표현이 있었는지, 사적인 공간에서 만났는지, 대화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주변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입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자료가 있다면, 그것이 관계의 외형을 보여주는 자료인지 아니면 친밀성의 표지를 보여주는 자료인지를 먼저 구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에 소개된 사례는 실제 재판례를 바탕으로 하되, 당사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실관계를 각색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과 결과는 실제 판결의 내용 그대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