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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정폭력이혼소송, 결심과 시작이 절반
가정폭력을 겪고 이혼을 결심한 분들 중에는 결심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폭력 뒤에 따라오는 사과와 그 사과 뒤에 되풀이되는 폭력, 아이들이 겪게 될 변화에 대한 걱정, 생활비를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정, 그리고 소송을 알렸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마도 주위에서는 왜 아직도 떠나지 않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물론 그 질문에는 걱정이 담겨 있겠지만, 사실 떠나지 못한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혼을 결심하는 것과 당장 집을 나올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결심을 독려하는 글이 아닌데, 결심은 이미 되어 있고, 문제는 보복과 주거와 생활비와 자녀 때문에 첫걸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한 뒤에야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순서를 정하면 지금의 여건에서도 시작할 수 있는 조치가 있고, 이 글은 그 순서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 순서는 무엇일까요?
첫 순서는 배우자에게 결심을 알리는 것이 아닌데, 통보는 그 자체로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이어서, 그 전에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상대방이 연락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무엇인지, 집을 나와야 할 때 머물 장소가 있는지, 자녀의 안전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입니다. 이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보는 상대방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면서 자신에게는 물러설 곳을 없애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급박한 위험 앞에서는 증거 확보보다 신고와 안전 확보가 우선이어서, 폭력이 진행 중이거나 임박한 상황에서 소송에 쓸 자료를 남기려 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112 신고와 여성긴급전화 1366처럼 안전하게 도움을 요청할 연락 경로를 미리 알아 두고, 그것을 쓸 수 있는 방법, 예컨대 상대방이 볼 수 없는 연락 수단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함께 정해 두는 것이 이 단계의 일입니다. 안전이 확보된 뒤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가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이혼 사유는 어떻게 입증할까요?
민법 제840조 제3호는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재판상 이혼사유로 정하고 있고, 대법원 1999. 2. 12. 선고 97므612 판결은 이를 혼인 당사자의 일방이 배우자로부터 혼인관계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폭행이나 학대 또는 중대한 모욕을 받았을 경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혼 사유의 입증은 폭행의 횟수나 진단서의 유무로 단순화되지 않습니다. 폭행뿐 아니라 협박과 모욕, 생활 전반에 대한 통제까지 구체적인 행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혼인생활과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함께 정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료는 그 경위를 뒷받침하는 범위에서 모이는데, 다친 부위의 사진, 진료기록, 신고 내역, 위협이나 모욕이 담긴 메시지, 그 상황을 본 주변 사람의 관찰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경과를 이루면, 어느 한 자료가 없어도 경과 자체가 증명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여야 하는데, 자료를 만들기 위하여 다시 위험에 노출되거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있는 자료를 안전한 곳에 모으고 기억을 시간순으로 적어 두는 것으로 충분하고, 없는 자료를 만들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이 절차의 목적과 어긋납니다. 그렇다면 이혼소송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법적 절차는 세 갈래이고 각각 하는 일이 다른데, 첫째는 가해행위에 대한 형사적 대응이고 둘째는 접근과 접촉을 제한하는 보호절차입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5조의2는 판사가 피해자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피해자 등의 청구에 따라 가정폭력행위자에게 주거로부터의 퇴거 등 격리, 주거나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친권행사의 제한, 면접교섭권 행사의 제한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을 함께 명할 수도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혼인관계를 해소하고 재산과 자녀 문제를 정하는 이혼소송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보호조치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퇴거나 접근금지는 위 특례법에 따른 '피해자보호명령'을 별도로 청구하여 받는 것이고, 이혼소송은 그것과 다른 절차입니다. 그러므로 위험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이혼소송과 별개로 보호명령을 함께 검토하여야 합니다.
별거 이후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저절로 정리되지 않아서, 주거비와 생활비, 자녀의 등하교와 돌봄, 상대방과의 접촉 문제가 이혼 판결 전에 이미 닥칩니다. 가사소송법 제62조는 이혼소송이나 조정 신청이 있는 경우 가정법원이 사건 해결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관계인의 감호와 양육을 위한 처분 등 적당한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사건에 따라 임시양육자 지정이나 양육비 지급 같은 사전처분을 함께 구할 수 있습니다. 폭력을 입증하였다고 경제와 양육 문제가 저절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혼 청구와 함께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처음부터 설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시작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지는데, 첫 상담에서 모든 증거와 결론을 갖추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폭력이 어떤 경과로 이어져 왔는지, 자녀는 어떤 상황인지, 거처와 경제적 제약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하면, 그 사정에 맞추어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지의 우선순위가 정해집니다. 어떤 분에게는 보호명령이 먼저이고, 어떤 분에게는 거처와 사전처분이 먼저이며, 어떤 분에게는 이혼소송을 곧바로 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정폭력 사건은 혼인을 끝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어서,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것과 그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함께 가야 하므로, 소송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부터 밀착된 조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통보의 시점을 정하고, 보호명령을 청구하고, 거처를 옮기는 일은 소장을 접수하기 전에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그 각각이 이후의 절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글의 결론은 결심하였으니 즉시 소송하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상황에서 지금 실행할 수 있는 첫 조치가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고, 시작이 절반입니다.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하였지만 무엇부터 하여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계신 상황이라면,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변호사와 상세한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