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혼인사실에 대한 기망과 성적자기결정권침해 2026-02-06

혼인사실에 대한 기망과 성적자기결정권침해

 

배우자 있는 사람과의 만남, 예나 지금이나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일이며 과거에는 형사상 간통죄로 처벌되었고, 간통죄가 폐지된 현 시점에서도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본질적 의미를 고려할 때, 기혼자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문제적인 행동인 것이다. 따라서 이성과의 교제를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그 상대방이 결혼을 한 사람인지 여부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 자신부터 이미 기혼자라면, 배우자를 두고 연애 상대를 만난다는 것이 이미 그 자체로 문제이다. 하지만 미혼인 상태라면, 앞으로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내 만남의 상대방이 미혼일 것을 전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부남 또는 유부녀를 만난다면 그것은 이미 불륜이고, 적발될 경우 상대방은 이혼소송을, 나 자신은 상간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문제가 없는 만남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기혼자임을 알고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남의 상대방이 나에게는 미혼인 것처럼 행세하였는데, 알고 보니 배우자가 있는 기혼자라면 어떨까? 물론 이러한 경우, 상간소송이 들어올 가능성은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소송을 당한다 하더라도 적절히 대응하면 충분히 기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상간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기각이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법률적 문제를 따지고 들기 이전에, 상대방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앞서게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면서도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미혼인 사람과 교제하였다는 것 자체가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고, 만남의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했어야 할 중요한 요소에 관해 결정적인 속임수를 쓴 것이다. 감정과 시간의 낭비이며, 심지어 불필요한 법률적 리스크까지 짊어지게 된다. 법률적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법률은 이런 상황을 두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이해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적자기결정권을 갖는데, 이 성적자기결정권의 극단적 침해 형태는 다름아닌 강제추행이나 강간과 같은 성범죄라고 할 수 있다.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유형력의 행사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나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사상의 범죄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만남의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요소에 대하여 일종의 사기행각을 벌임으로써 나의 선택권이 침해당했다면, 이는 범죄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명백한 권리 침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백한 권리 침해가 있었던 이상, 이런 상황에서는 형사고소는 불가능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 등은 이미 폐지된 조항이며, 엄밀하게 따지고 보자면 지금 여기서 언급하는 상황과는 다른 경우이기도 하다), 최소한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여지는 있다. 바로 이것이 성적자기결정권침해로 인한 위자료청구소송이다. 상대방이 기혼자이면서도 기혼사실을 숨기고 접근하여 나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다면, 그 정신적 고통이 법률상 충분히 인정되고 그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로, 소송을 제기하고자 하는 이는 기혼자여서는 안 된다. 이미 내가 기혼자로서 불륜을 저지른 이상, 상대방이 미혼이라고 속였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문제를 삼을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이다. 둘째로, 상대방이 기혼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단순한 불고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물론, 이 경우에도 소송은 가능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적극적 기망행위가 입증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간소송과는 달리 아주 흔한 소송은 아니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라 하더라도 판례에서 인정되는 위자료의 액수 편차가 있는 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과거에 비해서는 성적자기결정권침해로 인한 위자료청구소송에서 인정되는 위자료의 액수 역시 상향되고 있는 추세라는 사실이다. 특히 본 소송은 혹시 제기될지도 모르는 상간소송을 대비하여 선제적 공격소송을 진행함으로써 예비적으로 상간소송을 당할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러한 기망 사실이 있었다면 반드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실무상 문제되는 경우로서 당초 만남을 시작할 당시에는 상대방이 기혼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철저히 속았지만, 추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가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물론 상대방은 그냥 형식뿐인 혼인관계라고 하거나 이혼할 예정이라고 하는 등 또 다른 속임수를 썼을지 모르지만, 기혼자라는 것을 알고도 만남을 이어간 이상 그 상황에서는 상간소송이 들어왔을 때 기각시킬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만남 상대방이 유부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즉각 만남을 중단하고 본 소송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위와 같이, 최초 만남 당시에는 속았으나 이후 상대의 기혼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경우에는 성적자기결정권침해로 인한 위자료청구소송 자체가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이 경우에도 소송은 가능하다. 알고 난 뒤에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이전의 기망 사실이 위법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고, 피해가 없었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목적을 띄는 위자료의 특성상, 이러한 경우에는 위자료의 액수가 대폭 삭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술하였듯이 상간소송이 들어오는 경우에도 기각시킬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기망당한 사실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 이후에도 만남을 가졌다가 법률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전반적인 맥락과 각각의 기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간소송과 별개로 성적자기결정권침해소송을 강행할지, 아니면 상간소송을 방어한 뒤에 구상금청구소송에 부수하여 그 책임을 물을지 결정해야 한다. 그 판단이 용이하지만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에게 적절한 조력을 구하고 맞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