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 (2): 원칙적 제한과 예외적 허용 2025-02-26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 (2): 원칙적 제한과 예외적 허용

 

1.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과 재판상 이혼 원인에 관한 입법태도 간의 상관관계

 

앞 글에서는 이혼에 관한 법제로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대하여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재판상 이혼청구권에 대하여 논의할 때에 엄격한 요건 하의 유책주의를 택하느냐 아니면 실질적 혼인 파탄을 청구 인용의 기준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는 언뜻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과 높은 관련성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유책배우자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일방을 의미하고, 유책주의 법제하에서는 전술하였듯 피청구인의 유책성과 청구인의 무책성을 요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청구인이 유책배우자라면 이혼청구가 불가한 반면, 청구인이 유책배우자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혼인이 파탄 상태라면 파탄주의 이혼법 하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유책주의 법제 하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될 수 없고,

파탄주의 법제 하에서는 유책배우자 이혼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유책행위가 있어야만 이혼청구가 가능하다는 명제와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명제가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협의이혼제도를 두지 않고 있으면서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에도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청구를 할 수 없도록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사례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법례를 이른바 소극적 파탄주의라고도 합니다.

 

반면에 유책주의 법제라고 하더라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민법만 하더라도 명문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할 것인지 여부는 단순히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느냐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는지의 문제는 아니며, 오히려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파탄주의와 유책배우자 이혼청구권 제한은 양립할 수 있으나, 유책주의와 유책배우자 이혼청구권 허용은 개념상 양립할 수 없다는 학설이 있으며,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2. 유책배우자 이혼청구권의 원칙적 제한

 

그렇다면 우리 민법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배척하는 명문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데,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요?

당초 민법이 제정된 직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에 대해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며 그 근거는 명문의 규정이라기보다는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과 권리남용이라는 민법의 일반원칙 위반과 더불어 혼인의 도의성과 사회통념에 반한다는 도덕률 위반이라는 견해에 의해 뒷받침되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었던 미성년 자녀와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학설을 소극설이라고 합니다.

 

한편, 학설 뿐만 아니라 판례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65년 대법원 65므37 판결에서는 불임의 처를 버려두고 축첩을 하고 내연녀와 노골적인 만남을 가졌던 남편이 혼인관계의 파탄을 이유로 이혼청구를 한 사안에서, 남편이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대법원은 일관되게 우리 법제가 이혼에 관한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으며, 혼인관계 파탄에 스스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단순히 혼인 파탄이라는 이유로 허용하게 된다면 고의로 혼인을 파기한 불법을 행한 자에게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하여 왔습니다.

 

 즉, 민법이 제정된 이후 우리나라의 법학계와 대법원에서는 줄곧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은 강경하게 배척하였으며,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 실질적 혼인 파탄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전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이런 사례들은 유책배우자가 아닌 다른 배우자가 이혼을 강경하게 거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부 쌍방이 이혼에 동의한다면 이러한 논의 자체가 의미를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시간이 흐르며 완화되는 대법원의 판례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이혼법의 역사 속에서 이혼의 당위성을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문제가 시대의 흐름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에 대한 강경한 배척의 입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보이게 됩니다.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된 것은 1987년 4월 14일 선고된 대법원의 86므28 판결이며,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재산분할청구권이 신설되면서(그 이전에는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위자료청구권만 인정되었을 뿐이고, 재산분할의 기능은 위자료가 겸하였습니다.

재산분할청구권의 신설은 위자료와 재산분할의 법적 개념을 구분하여 이론적으로 정치하게 한다는 법이론적인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무책배우자의 보호를 강화하는데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에 관한 대법원 판례와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학설의 통설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대법원 86므28 판결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한다면 혼인제도의 도덕성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며 일방적 의사에 의한 이혼과 축출이혼을 인정하게 되므로 부당하다는 큰 원칙에는 여전히 동의하면서도,

이러한 법제의 근본 취지는 이혼을 희망하지 않고 있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혼판결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점에 있는 것이지 그 상대방 역시도 혼인 지속의 실질적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혼인관계를 강제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이는 어디까지나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원하고 무책배우자는 혼인지속을 원하는 때에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기각한다는 의미이지, 무책배우자도 혼인지속을 원치 않는다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향적인 판결인 것입니다.

이 판결 이후 앞서 말씀드린 민법 개정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학설 역시 무조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예외사정이 있는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하여야 한다는 제한적 소극설로 선회하게 됩니다.

 

 대법원의 판례가 변경된 이상 1990년대 이후에는 비록 우리 법원이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입법적으로도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융통성 없는 소극설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며, 일정한 예외적 상황에서는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여 이혼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외가 광범위하다면 입법의 취지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 예외는 문자 그대로 ‘예외적’ 상황에서만 인정될 수 있습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예외적 상황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4.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들

 

과거로부터 흔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으로 언급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두 가지는 비교적 판단이 쉬운 반면, 다른 한 가지는 엄격하게 해석해왔습니다. 우선 이들 세 가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쌍방유책인 경우에는 책임이 대등하거나 오히려 가벼운 쪽에서는 이혼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혼인 파탄에 전적으로 또는 주로 책임이 있는 당사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의 반대해석상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유책행위는 혼인 파탄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 제한되는 것이지, 혼인 파탄 이후에 발생한 유책행위처럼 파탄과의 인과관계가 단절된 경우에는 해당 유책행위를 이유로 이혼청구권이 배척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논하는 예외적 상황이란, 본인의 유책행위로 혼인 파탄의 책임을 초래한, 쌍방유책이 아닌 본연의 의미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임에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는 앞서 언급한 1987. 4. 14. 선고 86므28 판결에서 판시한 것으로, 무책배우자 측에서도 혼인 지속 의사가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해당 판결은 무책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하고는 있으나 그것이 실질적으로 혼인 지속 의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오기나 보복의 감정에서 표면적으로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경우까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배척할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세 번째는 다름아닌 피고의(무책배우자의) 이혼의사도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경우는 피고가 이혼을 거부하고 있으면서도 이혼의사는 객관적으로 명백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과연 언제 피고의 이혼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가 문제됩니다.

 

과거 판례는 이러한 피고의 이혼의사 추정에 관하여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였는데, 이혼 조건으로 위자료를 주장하거나 협의이혼에 합의한 사실이 있는 경우조차도 이혼의사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다수의 판례가 존재합니다.

즉,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도저히 혼인 지속의 의사가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자료들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외사유에 속하지 않는 경우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은 엄격하게 배척되었는데,

심지어 아주 오래 전 유책행위로 인해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장기간의 별거가 지속되고 있는 경우에도 피고의 이혼의사가 명백하지 않는 한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아내가 30년 전 외도한 후 30년간 별거하면서 사실혼으로 새살림을 차린 유책배우자인 아내의 이혼청구를 30년의 별거기간에도 불구하고 기각한 2004년의 판례).

 


 

5. 판례의 변화와 유책배우자의 전략적 접근에 대하여

 

그렇다면 요즈음의 이혼 실무는 어떨까요?

앞서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엄격하게 유책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은 극히 예외적 상황에서만 허용될 뿐이고 원칙적으로는 엄격히 배척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원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 1987년이고, 학설이 완화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초반입니다.

이미 지금은 그 이후로도 거의 40년이 흐르고 있는 시점입니다. 대법원의 판례는 그 이후 크게 변한 것이 없지만, 이혼소송의 실무는 이러한 엄격한 해석에만 의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는 대원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본인이 부정행위와 같은 유책행위를 저지르고도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배우자를 향하여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이혼 판결을 얻어낼 수 있다면, 민법 제840조에서 재판상 이혼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면서 청구인의 무책성과 피청구인의 유책성을 요구하는 우리 민법의 제도 근간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적반하장의 이혼청구는 파탄주의 법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예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유책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기가 쉬운지를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한 경우 위 판례에 의하여 변수 없이 쉽게 기각될까요? 이것은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

 

상기한 우리 법원의 태도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극히 예외적인 요건 하에서만 허용할 뿐이고 원칙적으로는 모두 배척한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결코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비판이 가해져 왔습니다.

이미 혼인관계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는 혼인 파탄 상태의 부부에 대하여 혼인관계를 지속하라는 판결을 내린다고 하여 그 부부관계가 과연 회복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그리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다루는 모든 실무자에게는, 이혼을 쉽게 허용해주면 본인의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이혼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용인해주는 결과가 된다는 점과, 허용해주지 않으면 이미 파탄에 이르러 회복 가능성을 일체 찾아볼 수 없는데도 그 결과가 보이는 이혼 기각의 판결을 해야 한다는 점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무책배우자의 태도입니다.

 

요즈음 특히 하급심 법원에서는 이혼사유를 판단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에 있어서도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피고의 혼인지속의사를 중요하게 봅니다.

피고의 혼인지속의사는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한 사건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청구를 인용할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보는 요소이면서도, 과거 우리 법원이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온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질적으로 혼인관계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피고도 실질적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혼인 지속을 바라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경우까지 청구를 무작정 기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인식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입니다.

 

그렇다 보니 실무상으로는 유책배우자로서 이혼을 청구하는 쪽에서는 상대측을 흔들어 반소를 제기하게 하거나 청구가 인용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자 하고,

청구를 방어하는 쪽에서는 무작정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혼인지속의사의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어려움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유책배우자의 이혼소송은 판레와 학설에 의해 굳어진 원칙과 실제 의뢰인들의 온도가 상당히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6.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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